배우 김명민은 말했다.
'김명민'이라는 본명 보다는 극중 주인공의 이름이 더 유명한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얀거탑>의 장준혁 과장이 그러했고,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가 그러했듯 말이다.

이처럼 맡는 역할에 따라 팔색조처럼 변신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가히 혀를 내두를 만하다.
최근 본 영화 <스타트랙- 더비기닝>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때 에릭 바나 라는 글자를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분명 내가 위노나 라이더까지는 알아챘는데 말이지 에릭 바나가 언제 나왔어? 초반에 죽었나? 뭐 이런 생각을 하다가 영화 팜플렛을 집었는데 글쎄!


1. <스타트랙 - 더 비기닝>의 '나쁜놈(본명 네로)'



댁이었어? -_- 난 진정 몰랐다. (눈썰미 없다 욕하지 말아요) 생각해보니 에릭 바나는 늘 그랬던 것 같다. 브래드피트 보러 갔다가 헥토르에게 반하고 온다던 <트로이>에서도 '저 사람이 헐크라고?' 했으니 말이다.
(물론 헐크는 CG임 ㅋㅋ)




2. <헐크>의 성난 '헐크'                                            
3. <트로이>의 '헥토르'




이처럼 보는 영화 마다 관객을 놀라게 하며 과감하게 변신 하는 배우는 또 누가 있을까? 
난 단연 2명의 배우가 떠오른다.  


첫번째로, 하비에르 바르뎀


4. <씨 인사이드>의 젊은 '라몬'
5. <씨 인사이드>의 나이 든 '라몬'



두 장 모두 영화 <씨 인사이드>의 스틸컷이다. 
난 1번 스틸컷만 보고는 무슨 스포츠 영화인 줄 알았다. 풍성한 머리칼 만큼 넘치는 건강미가 돋보인다.
그러나 알고보니 영화는 불의의 사고로 전신이 마비 된 남자 '라몬'의 이야기 였다는 거. 사실 영화 보면서도 1번 라몬이 대역인 줄 알았음.(지금은 자주 봐서 얼굴 익숙하지만, 그땐 하비에르 바르뎀을 처음 본 것이었기에 더 낯설었다.) 이 영화는 나에게 엄청난 감동과 고뇌를 안겨주었으며, 이후 DVD까지 구입했고, 그해 말 김봐둑 어워드에서 수상까지 했을 정도로 좋아하는 영화가 되었지만, 배우 이름은 몰랐다. 그냥 온화한 미소를 지닌 스페인 배우라는 것만 알았을 뿐.





6.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단발 머리 '안톤 시거'



그랬던 그가 나에게 의미 있는 꽃이 된 것은 바로 이 영화 때문이었다. 
당시 영화 보는 내내 '어디서 많이 봤던 얼굴인데...'라는 물음표를 떨쳐버리지 못했던 나. 
영화 끝나고 집에 와서 검색을 해봤는데 글쎄, 이 사람이 라몬(씨 인사이드)이래.-_- 오우 마이 갇뜨
그 온화하고 따뜻했던 라몬이 이 막장 비호감 최강 돌+아이 안톤 시거라니!

그때 난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력에 혀를 내둘렀고, 배우의 변신은 무죄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정말이지 완벽한 변신. 에릭 바나는 분장과 연기력의 승리였다면, 하비에르 바르뎀은 연기력과 단발머리-_-의 승리다.




7. <빅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의 옴므파탈 '후안 안토니오'
 


그 이후 약 2년 뒤, 하비에르 바르뎀은 바르셀로나의 태양 아래에서 수컷냄새 한껏 풍기는 '후안 안토니오'로 완전히 변신해 있었다. 이 영화 보고도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이 치명적인 남자가 진정 기묘한 단발머리 살인마 '안톤 시거'가 맞단 말인가? (얼마나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인지 스틸컷 마다 다 저러고 있어.) 이쯤되면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이란 사람의 정의 자체가 미궁 속에 빠져든다. 도대체 이 사람은 라몬인가 안톤 시거인가 후안 안토니오 인가. 이 사람은 본래 무슨 성격의 소유자일까. 이 사람은 과연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기는 한 것인가? 아이돈노우. 


하비에르 바르뎀 만큼이나 매번 새로운 변신으로 날 놀라게 하는 또 한 명의 배우는 '히스레져'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과묵한 카우보이 델마. 난 이때만해도 내가 히스레저를 처음 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에가서 또 자판을 두드려보니 글쎄! 내가 히스레저의 필모그라피의 50%이상을 이미 봤더라고. 컹컹
히스레저 이름 밑에 딸려나온 영화들을 보면서도 믿지 못했다. 이 영화들에서 히스레저가 나왔다고?





 8-9,, <브로크백 마운틴>의 '델마'
10. <그림형제- 마르바덴 숲의 전설>

11.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히스레저는 볼때마다 다른 사람 같다. 딱히 맡은 역할이 유별나다거나, 연기가 강렬해서라기 보다는 애초에 히스레저 자체의 색깔이 흐릿하다고 할까? 그러니까 뭔가 스타로서의 화려함? 배우로서의 뚜렷한 개성? 같은게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면 배역 이름만 남고 '히스레저'의 존재는 남지 않았다. 심지어 난 <그림 형제>에서 히스레저가 맡은 '제이콥'을 좋아했다니까. 근데 <브로크백마운틴> 보고 못 알아봤다. 필모그라피 보고 난 후에도 '설마 그 안경잡이가 히스레저였다고? 그럴리가 없는데...' 했다. 나란 여자, 그런 여자.  이렇듯 히스레저는 딱히 이미지랄게 잡히지 않는 배우다. 그래서 새로운 역할로 눈 앞에 나타날 때마다 몰입이 확확 된다. 그냥 영화 속 그 인물 히스레저고 히스레저가 그 인물 같다.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참 신기하징.



12. <다크나이트>의 '조커'


역시 압권은 바로 <다크나이트>의 조커겠지. 처음 조커의 모습이 공개 되었을 때 얼마나 섬뜩했는지. 팀버튼의 영화에서는 심지어 귀엽기까지 했던 조커가 히스레저를 만나 후덜덜한 모습으로 변해있었고, 기대만큼 그의 연기도, 영화도 훌륭했다. <다크나이트>는 진정 대작명작수작임. 굳~
그러나 슬플게도 히스레저는 허무하게 떠났다. 인생무상.


이렇게 변신을 거듭하며 자신에 대한 정의 자체를 부인하는 배우들이 있는가 하면, 늘 비슷한 역할과 이미지로 일관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히스레저처럼 사람 자체가 흐릿한 배우가 있는가 하면, 너무 개성이 뚜렷해서 어떤 일정한 역할에서 100%이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도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좋아하는 클라이브 오웬은 거친 이목구비와 수염자국, 퉁명스러운 입매, 그리고 굵고 낮은 목소리로 터프하면서도 줏대 있는 남자나  때로는 마초끼가 다분한 역할도 곧잘 맡고, 특히 <신시티>와 같이 하드보일드한 느와르에 너무 잘 어울린다. <거침없이 쏴라 슛뎀업>이나 <신시티>, <인사이드맨>, <칠드런 오브 맨>, 최근 개봉한 <인터내셔널>까지... 클라이브 오웬이 맡은 역할은 다 비슷비슷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그가 좋은 배우가 아닐까? 노노. 너무 좋아! 21세기 필립 말로우로 낙점 받았다고 하는데 그 영화는 언제 찍나 몰라. 완전 기대 중.

또 브래드 피트는 어떻고? 물론 그는 연기 변신을 위해 꽤나 노력하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래드 피트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파이트클럽>, <트로이>이 같은 영화 아니겠어? 훗. 특히 브래드 피트가 아니었다면 젊어지는 '벤자민 버튼'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고 드라마틱 할 수 있었을까? ㅋㅋ    

그래서 결론은, 연기 잘하는 배우가 좋다는거다.
변신을 하든 안하든 맡은 배역에 최선을 다해서 영화를 반짝 반짝 빛내주는 것이 배우의 몫이자 소망이라는거. 관객들은 그냥 감독과 배우들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얻으면 되는거다. 훗~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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