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워

from 이야기의 숲 2009. 8. 17. 16:37



이 영화의 교훈 - "여자는 어려운 수학문제를 푸는 남자에게 매력을 느낀다."

여자치고 이 말을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텐데,
남자들은 절대 이해 못하는 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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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즈는 초식남?

from 이야기의 숲 2009. 8. 1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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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하는 홈즈 시리즈를 읽다보면 박진감 넘치는 추리 과정 외에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의 일상에도 조금씩 관심이 생긴다.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때, 홈즈의 생활은 그야말로 초식남 그 자체이다. 소설 속에서 홈즈는 빼어난 두뇌와 탐정으로써의 뛰어난 능력, 적당한 키에 약간 마른 몸매 청결함이 돋보이는 손과 얼굴까지 외모도 빠지지 않는 편이다. 또 금전적으로도 아무 불편을 격지 않는 그는 런던 거리의 가난한 소년들에게 적당한 용돈을 제공하며 정보를 얻기도 한다. 그리고 항상 지팡이와 모자까지 구비한 양복을 깔끔하게 입고 출근하여 청결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하지만 평범해 보이는 것은 딱 여기까지 뿐이다. 홈즈 캐릭터가 초식남임을 발견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보다 그가 싱글 생활을 충분히 즐거워하고 있는 점이다. 그는 결혼에 대한 압박을 전혀 받지 않은 채 자신의 생활을 진심으로 즐긴다. 

겉으로 보이는 품위와 명예를 지키기 보다는 남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방식 또한 <결혼 못하는 남자>의 주인공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런 홈즈를 닦달하는 잔소리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홈즈의 유일한 사적 친구인 왓슨은 홈즈의 단점을 마구 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며 로맨스가 철저하게 배제된 셜록 홈즈 시리즈의 숨은 여주인공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왓슨은 밖으로 도는 불규칙한 직업을 가진 홈즈를 정성껏 보살피는 ‘내조의 여왕’이다. 왓슨의 본업은 의사로 홈즈의 주치의이기도 하지만 그의 또 다른 직업은 작가이다. 그는 홈즈에게 사건이 생기면 빠짐없이 따라가 온갖 험난하고 위험천만한 일들을 함께 겪은 후 소설가 뺨치는 문장으로 이것을 꼼꼼하게 기록한다. 사건이 해결된 후 이 사건일지를 읽으며 쑥스러운 듯 애정이 듬뿍 담긴 비난을 던지는 것은 홈즈의 유일한 낙이라고 할 수 있다. 나란히 자리 잡은 사무실에서 거의 하루 종일 함께 지내는 두 사람은 서로를 너무 잘 아는 둘은 가벼운 다툼 한 번 없을 만큼 다정한 사이이다. 고급스러운 취미를 가진 홈즈는 때때로 왓슨이 가벼운 낮잠을 잘 때 바이얼린을 연주해 주기도 한다. 보통 연인들의 닭살 행각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멀쩡하고 유능하며 결혼 적령기의 두 남자의 일상이 이러니 두 사람 사이에 스캔들이 안 날 수가 없다. 홈즈와 왓슨은 실제로 오랜 세월 여성 팬들에게 수많은 환상과 영감을 제공해온 커플이기도 하다. 하지만 몇 편의 시리즈가 끝난 후, 왓슨은 홈즈에게 사건을 의뢰했던 여자 중 한 명과 결혼에 골인한다. 그러나 홈즈는 유부남이 된 왓슨 곁에서 계속 독신으로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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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갠적으로 초식남을 좋아한다.
다르게 말하면 육식남은 별로라는 뜻이지.
(그래서 짐승돌을 좋아하지 않는다.)
셜록홈즈가 하찮은 로맨스에 연연했거나
여자에 꼬여 허둥댔다면
절대 그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ㅋ

원본글
http://www.segye.com/Articles/FamilyGlobal/Talk/Article.asp?aid=20090813003448&ctg1=16&ctg2=00&subctg1=16&subctg2=00&cid=01060216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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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를 봤다.

차우, 이 영화의 정체는 무엇일까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한 곳을 바라보는 포스터 속 주인공들을 보면 분명 공포나 스릴러물에 가까워보인다.
식인멧돼지의 습격? 이건 <괴물>의 성공을 등에 업고 나온 영화인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차우>는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정말 기가 막혔다.
이것은 <미스홍당무> 이후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신선함이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
고로 다들 꼭 봤음 좋겠다. 재미의 유무를 떠나서 꼭 봤음 좋겠는 영화이다. 이런 영화가 망하면 안된다!
(물론 재미도 있었다.ㅋㅋㅋㅋㅋㅋㅋ)


이 영화의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대략 등장인물 만으로도 이 영화의 정체가 궁금해지지 않는가?
그러나 섣부른 상상은 금물이다. 절대 상상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이 영화를 '공포, 모험, 스릴러'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애니멀판타지스릴러'라고 규정하고 싶다. 

그래서 결론은 뭐냐고?
강.추.라는거지.
특히 B급 영화 좋아하는 사람에게 딱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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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종로3가까지 아주 그냥 끝과 끝을 내달린 피곤누적의 날.=_= 
 
하지만 해리포터를 본 날!
극장 안의 관객들은 해리, 론, 헤르미온느의 작은 손짓, 표정 하나하나에 민감히 반응하며 까륵대기 일쑤.
그것은 마치 해찾사(해리포터를 찾는 사람들-_-)의 정모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 행복해.

'해리포터와 혼혈왕자'는, 이전에 영화화된 작품들이 방대한 소설의 내용을 최대한 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것과 달리, 혼혈왕자의 정체에 얽힌 기나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해버리는 결단을 내렸다. 마지막이 될 7편의 반전을 극대화 하기 위해 많은 것을 숨겨놓은 게 아닌가 싶다. 소설의 독자로서는 아쉬운 점이 분명 있었으나,  대신에 해리, 론, 헤르미온느의 재미난 에피소드는 최대한 살려놓아, 유독 어둡고 진지했던 '해리포터와 불사조기사단'에서의 섭섭함을 떨쳐버릴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론 위즐리는 최고였다.ㅋㅋㅋ

이렇게 해리포터와 함께한지도 거의 9년이 되었다. 매해 한 편씩 개봉한다던 해리포터의 영화화가 10년이나 이어질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놀라운 일이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과 같은 해 개봉했던 반지의 제왕도 완결되었고, 매트릭스도 완결되었으며, 스타워즈도 완결된 이 마당에, 해리포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흙.
작년에 소설이 완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아직 남았다는 희망으로 살았는데, 영화마저 끝나면 정말 무슨 재미로 사나? 나 마지막 영화때는 극장에서 진짜 많이 울 것 같다. 섭섭해서...(반지의 제왕 3편 엔딩 보고도 눈물 글썽였던 나인데, 해리포터는 오죽하리)
그때쯤이면 bbc에서 드라마로 다시 만들어 줬음 좋겠다.
시즌 7까지는 넉넉히 나올텐데ㅋㅋ
어쨌든, 난 해리포터 시리즈가 너무 좋다. ㅠ_ㅠ


P.S.
오늘 점심은 황소고집에서 한식으로 해결!
유니가 사줬닭.
닭유니는 돼지고기도 잘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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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까만책

from 이야기의 숲 2009. 6. 16. 21:56

 

 



블랙북은 마치 유태인 스파이와 독일군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를 해줄 듯 하더니,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전쟁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쟁에 미친 인간 군상들의 끔찍함이랄까. 홀로코스트를 소재로한 많은 영화를 봐왔지만 블랙북은 그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열받는' 영화였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쩜 저럴 수 있을까 싶어서 참 찝찝. 그건 단순히 나치로 대표되는 독일군 뿐 아니라 전쟁을 둘러싼 모든 인간에 대한 끔찍함이었다. 독일군의 만행이야 익히 알고 있는터였으나 그 외의 유럽인들의 광기 역시 끔찍했다. 지긋지긋해. 하긴 그때 아시아에서도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결과적으론 '인간'이라는 종족에 대한 회의가 느껴졌다는게 내 솔직한 마음이다. 뭐 나도 그 상황이라면 눈이 홰까닥해서 미친짓을 저지를 수도 있었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까 더 기분 나쁜거다. 나치에게 말도 안되는 핍박을 받았던 유태인들은 독일패전 후 독일군에게 똑같은 핍박을 가한다. 결국 그들은 '나치'였기 때문에 가해자가 되고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피해자가 된 것이 아니라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해자 나치가 되고 힘이 없었기 때문에 피해자 유태인이 된 것이다. 힘의 균형이 바뀌게 되면 결국 나치나 유태인이나 잔인하고 치졸하긴 매한가지. 그 밖에 독일과 유태인을 둘러싼 유럽인들도 전쟁통에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아볼까 싶어 온갖 추한 짓을 저지르고. 그렇게 서로 먹고 먹히는 상황. 참 무서웠다.=_= 결국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결론을 가슴 속에 새기며 파란만장했던 레이첼 스타인의 삶을 지켜보았다.

 영화가 전쟁 후 '레이첼 스타인'의 즐거운 삶을 조명하면서 끝났다면 기분이 좀 나아졌을텐데 심지어는 그것도 아니었다. 독일의 패전 후 세계2차대전에서 살아남은 레이첼 스타인은 이제 '이스라엘 대 팔레스타인' 이라는 새로운 전쟁 속에 살아가고 있다니깐. 아효 지겹다 전쟁. 

 끔찍했던 세계대전이 끝난 현재, 독일과 일본 같은 전범국가는 물론이요 그들을 둘러쌓던 세계 열강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점잖빼며 평화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그곳에서는 과거와 똑같은 말도 안되는 추악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관타나모로 가는 길 보고 정말 토나왔다.=_=) 언제든 누가 부추기기만 하면 지금 고고한 척 점잖떠는 저 나라들도 단번에 미쳐가겠지. 우리도 예외는 아닐거다. 왜냐면 인간이니까! 무섭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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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년도 블랙북 개봉 했을 때 쓴 글인데 우연히 발견해서 올린다.
다른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관점으로 영화를 본 나의 모습이 반영 되어 있다.

나는 전쟁을 소재로한 영화를 보면 늘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나의 위치는 어디일까를  고민하는 것 같다. 내가 그 상황에 있었다해도 그러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내가 그 상황에 있었다해도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늘 이 두가지 고민을 하며 극장 문을 나선다. 그리고 그 고민은 결국 인간에 대한 회의로 귀결된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요즘도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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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더'는 졸지에 살인자라 낙인 찍힌 아들을 구하기 위한 '엄마'의 사생결단을 그리고 있다.
자기 자신과 아들 빼고는 경찰 조차도 믿을 수 없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 '마더'는 엄마의 이름을 걸고 아들을 구해내겠다 약속하고 다짐한다.
어쩐지 너무 쉽게 풀린다 싶었던 첫번째 추적에서, 경험 미숙으로 실패를 맛 본 엄마는, 더욱 치밀한 뒷조사(아줌마들 수다 엿듣기)와 증인의 확보(피해자 주변인물 탐색 및 대면조사), 증거품 확보 등에 힘 입어 점점 더 범인과 가까워진다. 때로는 따뜻한 엄마로서, 때로는 치밀한 탐정으로서, 때로는 강철의 침술사(?)로서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며 여느 형사 못잖은 추리와 추적을 계속 해가는 엄마 앞에, 드디어 범인은 서서히 모습을 나타낸다.

'마더'는 한 없이 따뜻하고 포근한 '엄마'라는 존재가 모성애라는 이름 안에서 얼마만큼 광기에 휩싸일 수 있는지를 그리고 있는 영화다. 곧 이 영화의 주제는 '진짜 살인자 찾기'나 '엄마와 아들의 사랑'이 아니라 '모성애의 두 얼굴' 정도라 할 수 있겠다.(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반전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 논의는 참으로 무의미하다.) 
도입부, 사회와 경찰력 앞에 최약자로 존재했던 엄마가 자신들보다 더욱 약자인자를 철저히 소외시키며 점차 강자로 등극하는 모습에선 소름이 돋았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이 배우 보다는 시나리오가 압도적이었던 영화라면, 이번 영화 '마더'는 시나리오 보다는 배우, 즉 김혜자씨의 연기가 압도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로 철 없고 극성스러운 엄마 역할이나 자상한 시어머니 역할을 맡곤 했던 김혜자씨가  이번 작품에선 시커먼 우비를 쓰고 촌길을 종횡무진 하며 영롱한 검은 눈동자로 영화를 밝히고 있었고, 그것이 영화 '마더'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또한 '봉테일'이라는 애칭에 걸맞게, 관객이 크게 염두해두지 않았던 짧은 컷이나 작은 소품 하나에도 중요한 롤을 맡겨둔 감독의 섬세함이 인상적이었다.

여전히 봉준호 감독의 최고의 작품은 '살인의 추억'이라고 생각하지만
'마더' 역시 기대를 믿음으로 갚아 준 재밌는 영화였다.
끗~








사족1. 내가 뽑은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장면은?
        = 약초 써는 작두 씬 ㄷㄷㄷ 청각의 공포가 후덜덜

사족2. 조인성이 군대갔다 슬퍼하지 말아요. 원빈이 돌아왔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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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명민은 말했다.
'김명민'이라는 본명 보다는 극중 주인공의 이름이 더 유명한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얀거탑>의 장준혁 과장이 그러했고,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가 그러했듯 말이다.

이처럼 맡는 역할에 따라 팔색조처럼 변신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가히 혀를 내두를 만하다.
최근 본 영화 <스타트랙- 더비기닝>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때 에릭 바나 라는 글자를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분명 내가 위노나 라이더까지는 알아챘는데 말이지 에릭 바나가 언제 나왔어? 초반에 죽었나? 뭐 이런 생각을 하다가 영화 팜플렛을 집었는데 글쎄!


1. <스타트랙 - 더 비기닝>의 '나쁜놈(본명 네로)'



댁이었어? -_- 난 진정 몰랐다. (눈썰미 없다 욕하지 말아요) 생각해보니 에릭 바나는 늘 그랬던 것 같다. 브래드피트 보러 갔다가 헥토르에게 반하고 온다던 <트로이>에서도 '저 사람이 헐크라고?' 했으니 말이다.
(물론 헐크는 CG임 ㅋㅋ)




2. <헐크>의 성난 '헐크'                                            
3. <트로이>의 '헥토르'




이처럼 보는 영화 마다 관객을 놀라게 하며 과감하게 변신 하는 배우는 또 누가 있을까? 
난 단연 2명의 배우가 떠오른다.  


첫번째로, 하비에르 바르뎀


4. <씨 인사이드>의 젊은 '라몬'
5. <씨 인사이드>의 나이 든 '라몬'



두 장 모두 영화 <씨 인사이드>의 스틸컷이다. 
난 1번 스틸컷만 보고는 무슨 스포츠 영화인 줄 알았다. 풍성한 머리칼 만큼 넘치는 건강미가 돋보인다.
그러나 알고보니 영화는 불의의 사고로 전신이 마비 된 남자 '라몬'의 이야기 였다는 거. 사실 영화 보면서도 1번 라몬이 대역인 줄 알았음.(지금은 자주 봐서 얼굴 익숙하지만, 그땐 하비에르 바르뎀을 처음 본 것이었기에 더 낯설었다.) 이 영화는 나에게 엄청난 감동과 고뇌를 안겨주었으며, 이후 DVD까지 구입했고, 그해 말 김봐둑 어워드에서 수상까지 했을 정도로 좋아하는 영화가 되었지만, 배우 이름은 몰랐다. 그냥 온화한 미소를 지닌 스페인 배우라는 것만 알았을 뿐.





6.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단발 머리 '안톤 시거'



그랬던 그가 나에게 의미 있는 꽃이 된 것은 바로 이 영화 때문이었다. 
당시 영화 보는 내내 '어디서 많이 봤던 얼굴인데...'라는 물음표를 떨쳐버리지 못했던 나. 
영화 끝나고 집에 와서 검색을 해봤는데 글쎄, 이 사람이 라몬(씨 인사이드)이래.-_- 오우 마이 갇뜨
그 온화하고 따뜻했던 라몬이 이 막장 비호감 최강 돌+아이 안톤 시거라니!

그때 난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력에 혀를 내둘렀고, 배우의 변신은 무죄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정말이지 완벽한 변신. 에릭 바나는 분장과 연기력의 승리였다면, 하비에르 바르뎀은 연기력과 단발머리-_-의 승리다.




7. <빅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의 옴므파탈 '후안 안토니오'
 


그 이후 약 2년 뒤, 하비에르 바르뎀은 바르셀로나의 태양 아래에서 수컷냄새 한껏 풍기는 '후안 안토니오'로 완전히 변신해 있었다. 이 영화 보고도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이 치명적인 남자가 진정 기묘한 단발머리 살인마 '안톤 시거'가 맞단 말인가? (얼마나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인지 스틸컷 마다 다 저러고 있어.) 이쯤되면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이란 사람의 정의 자체가 미궁 속에 빠져든다. 도대체 이 사람은 라몬인가 안톤 시거인가 후안 안토니오 인가. 이 사람은 본래 무슨 성격의 소유자일까. 이 사람은 과연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기는 한 것인가? 아이돈노우. 


하비에르 바르뎀 만큼이나 매번 새로운 변신으로 날 놀라게 하는 또 한 명의 배우는 '히스레져'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과묵한 카우보이 델마. 난 이때만해도 내가 히스레저를 처음 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에가서 또 자판을 두드려보니 글쎄! 내가 히스레저의 필모그라피의 50%이상을 이미 봤더라고. 컹컹
히스레저 이름 밑에 딸려나온 영화들을 보면서도 믿지 못했다. 이 영화들에서 히스레저가 나왔다고?





 8-9,, <브로크백 마운틴>의 '델마'
10. <그림형제- 마르바덴 숲의 전설>

11.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히스레저는 볼때마다 다른 사람 같다. 딱히 맡은 역할이 유별나다거나, 연기가 강렬해서라기 보다는 애초에 히스레저 자체의 색깔이 흐릿하다고 할까? 그러니까 뭔가 스타로서의 화려함? 배우로서의 뚜렷한 개성? 같은게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면 배역 이름만 남고 '히스레저'의 존재는 남지 않았다. 심지어 난 <그림 형제>에서 히스레저가 맡은 '제이콥'을 좋아했다니까. 근데 <브로크백마운틴> 보고 못 알아봤다. 필모그라피 보고 난 후에도 '설마 그 안경잡이가 히스레저였다고? 그럴리가 없는데...' 했다. 나란 여자, 그런 여자.  이렇듯 히스레저는 딱히 이미지랄게 잡히지 않는 배우다. 그래서 새로운 역할로 눈 앞에 나타날 때마다 몰입이 확확 된다. 그냥 영화 속 그 인물 히스레저고 히스레저가 그 인물 같다.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참 신기하징.



12. <다크나이트>의 '조커'


역시 압권은 바로 <다크나이트>의 조커겠지. 처음 조커의 모습이 공개 되었을 때 얼마나 섬뜩했는지. 팀버튼의 영화에서는 심지어 귀엽기까지 했던 조커가 히스레저를 만나 후덜덜한 모습으로 변해있었고, 기대만큼 그의 연기도, 영화도 훌륭했다. <다크나이트>는 진정 대작명작수작임. 굳~
그러나 슬플게도 히스레저는 허무하게 떠났다. 인생무상.


이렇게 변신을 거듭하며 자신에 대한 정의 자체를 부인하는 배우들이 있는가 하면, 늘 비슷한 역할과 이미지로 일관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히스레저처럼 사람 자체가 흐릿한 배우가 있는가 하면, 너무 개성이 뚜렷해서 어떤 일정한 역할에서 100%이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도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좋아하는 클라이브 오웬은 거친 이목구비와 수염자국, 퉁명스러운 입매, 그리고 굵고 낮은 목소리로 터프하면서도 줏대 있는 남자나  때로는 마초끼가 다분한 역할도 곧잘 맡고, 특히 <신시티>와 같이 하드보일드한 느와르에 너무 잘 어울린다. <거침없이 쏴라 슛뎀업>이나 <신시티>, <인사이드맨>, <칠드런 오브 맨>, 최근 개봉한 <인터내셔널>까지... 클라이브 오웬이 맡은 역할은 다 비슷비슷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그가 좋은 배우가 아닐까? 노노. 너무 좋아! 21세기 필립 말로우로 낙점 받았다고 하는데 그 영화는 언제 찍나 몰라. 완전 기대 중.

또 브래드 피트는 어떻고? 물론 그는 연기 변신을 위해 꽤나 노력하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래드 피트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파이트클럽>, <트로이>이 같은 영화 아니겠어? 훗. 특히 브래드 피트가 아니었다면 젊어지는 '벤자민 버튼'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고 드라마틱 할 수 있었을까? ㅋㅋ    

그래서 결론은, 연기 잘하는 배우가 좋다는거다.
변신을 하든 안하든 맡은 배역에 최선을 다해서 영화를 반짝 반짝 빛내주는 것이 배우의 몫이자 소망이라는거. 관객들은 그냥 감독과 배우들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얻으면 되는거다. 훗~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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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봤다.
브래트 피트의 빛나는 외모는 영화감상에 오히려 해가 되었다.
수북히 먼지가 쌓인 낡은 보물상자를 조심스레 열어보는 듯했던 이 영화 속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오토바이를 모는 청춘 브래드피트가 등장하니,
너무 잘생겨서, 너무 세련돼서, 너무 간지나서
영화 전체를 새것처럼 닦아낸후 플라스틱 상자에 옮겨 담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흑백 영화 속에서 브래드피트만 총천연칼라처럼 보였다고나 할까?
하긴 브래드피트가 무슨 죄냐. 잘난게 죄는 아니지.
갠적으로 브래드피트는 <파이트클럽>이나 <트로이>에서의 모습이 제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게 그의 매력의 집대성이다.  
 
포스터는 영화 초반에 나오는 데이시 아역이 나온 것을 가져왔다.
아가가 너무 예쁘더라고.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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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무릎팍도사>에 나온 여배우 이미숙씨는 사랑은 나이와는 무관하다며, 자신이 60세쯤 되면 진한 멜로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 이전에 출연하여 전국민을 감동시킨 이순재씨 역시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라며, 중년 및 노년의 사랑을 그리는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라벤더의 연인들>은 바로 그런 점을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단지 사랑의 대상이 20대 청년이라는 점이 다를 뿐.

영국의 대표 여배우 매기 스미스(자넷)와 주디 덴치(우슐라)를 내세우는 이 작품은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 오늘과 다를 것 없는 내일을 사는 두 노부인의  무기력한 삶에 젊은 청년이 등장하면서 시작한다.
해변에 쓰러져있는 폴란드 청년 안드레아에게 첫 눈에 설렘을 느낀 우슐라는, 황혼에 찾아온 첫사랑의 감정에 혼란을 느낀다. 성별로는 male과 female이지만 둘의 나이차는 거의 반백년에 가까운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최 컨트롤이 안되는 자신의 마음을 작은 꽃 한 송이로 표현하는 소녀 같은 우슐라. 비록 그녀의 머리칼은 하얗게 센 회색빛이었지만 마음 만은 핑크빛이어라. 그러나 그녀의 마음을 알리 없고, 알아도 어쩔 수 없었을 안드레아와의 행복한 일상은 곧 끝을 향해 내달린다.  

노년 부인이 20대 청년에게 사랑과 욕망을 품는다는 영화의 줄거리만 보면 이 영화는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소재의 파격은 영화의 배경이 된 아름다운 전원 풍경과 평화로운 주민들의 일상의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는 감독의 연출력에 의해 순화된다. 그리고 곧 관객의 마음은 노부인의 아슬아슬한 외사랑을 무게 있는 그려내는 주디 덴치의 눈빛에 동요된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그녀의 눈가 주름이나 회색빛 머리칼은 잊은 채 우슐라의 소녀 같은 순정에 가슴이 찡해 온다.

나이 들었기 때문에 사랑을 포기해야한다는 것은 우슐라의 말처럼 'unfair'하다.
만약 우슐라 역시 안드레아 처럼 청춘이었다면 둘은 해피엔딩을 맞이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편으론, 우슐라는 안드레아의 청춘에 반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청춘의 아름다움은 그게 안드레아가 아니었더라도 충분히 매혹적이지 않았을까.
물론 그것이 청춘에 대한 매혹이었든 아니었듯 우슐라의 사랑은 사랑 그 자체였다.

이 영화의 또다른 감상 포인트는 바로 영화 전반을 흐르는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영국의 해안마을 '콘월'의 청아한 하늘 아래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안드레아의 모습은, 섬세한 바이올린 선율과 어울려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한 폭의 그림 같다'라는 표현은 지독히 상투적이면서도 기똥찬 표현 같음)
영화의 주제곡 'Ladies In Lavender'는 <레드바이올린>의 조슈아 벨이 연주를 맡았고, 엔딩을 아름답게 수놓은  'Fantasy For Violin and Orchestra'는 조슈아 벨과 로얄필하모닉이 협연이라고 하는데, 오 뷰리풀, 엑설런트, 브륄리언ㅌ! 역시 영화의 품격을 올려주는 화룡점정은 사운드트랙이라는 생각을 했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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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홍당무

from 이야기의 숲 2009. 2. 2. 00:40



나의 지루한 일상에 신선한 돌팔매질을 한 영화, 미스 홍당무.
이건 정말 한국 영화계의 기념비적인 작품이자 근래 본 영화 중 가장 기가 막힌 작품이다.(진짜 기가 꽉 막힘)
개봉 당시 극과 극의 평이 남무해서 관람을 고사한 것이 후회스럽다. 극장에서 다른 사람 반응 살피며 같이 봤음 좋았을것을.

미스홍당무는 언뜻 보면 최근 몇 년간 유행했던 '애인 없고, 인기 없고, 예쁘지도 않은 노처녀의 사랑찾기'  같다.
하지만 미스홍당무에는 마크다시(브리짓존스의 연인)가 없고, 지피디(최미자의 연인)도 없다.
그녀에게 있는 것이라곤 분신과 같은 핸드폰과 감정의 변화에 민감히 반응하는 안면홍조증 뿐.
친구도 없고 애인도 없으면 착하기라도 해야하는데 양미숙은 착하지도 않다. 게다가 말재주도 없고, 싸가지도 없으며, 분위기 파악도 못한다. 게다가 4년간 짝사랑한 남자는 심지어 유부남이다. 매일 매일 유부남과의 아찔한 연애를 꿈꾸는 이 비호감 여선생의 징글징글한 일련의 몸부림을 담은 영화가 바로 미스홍당무이다.

매사 삽질만 하는 양미숙에게 진짜 삽을 들려주는 유치하면서도 어처구니 없는 오프닝부터 '뭔가 이 영화 심상치 않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후 진행되는 모든 에피소드들이 정말이지 황당하다.
29살 노처녀 양미숙의 짝사랑 상대를 기껏 중학생 딸내미를 둔 유부남으로 설정한 점(보통은 훈남), 고아로 태어나 전국구 왕따로 자라난 양미숙의 유일한 친구를 전교 왕따 여중생으로 설정한 점(심지어 좋아하는 유부남의 딸), 모두에게 사랑받기에 양미숙의 미움을 독차지 하는 미녀 여선생에게 순수미와 백치미를 선물한 점(보통은 도도녀) 등 캐릭터 설정부터가 벌써 골때리지 않나. 어쩜 이래. 당최 깔끔하고 세련된 캐릭터가 없다. 근데 또 죽도록 밉고 짜증나는 캐릭터도 없다. 뭐지 이 야따꾸리한 감정은?

영화를 보다보면 각본-감독을 맡은 이경미 감독이 얼마나 자유롭게 시나리오를 써나갔는가를 알 수 있다. 뭐하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얌체공 같은 스토리는 기존의 관습이나 고정관념, 사회적 통념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다. 그게 말이 쉽지 평생을 한국사회에서 살다보면 자연스레 사회적 관습대로, 욕 안먹게 적당히 글이 써지는 법인데, 그 테두리를 자유자재로 뒤흔드는,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불쾌하지 않고 오히려 웃음이 나는, 오묘한 매력이 가득했다. 작정하고 '사회적 통념을 깨는 캐릭터를 쓰겠어!' 같은 작위적인 냄새 보다는 원고지 위에 날개를 단 펜자루가 술술 이야기를 써내려간듯한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이걸 쓰면서 감독 스스로도 얼마나 재밌어했을지 상상이 되면서 부러워서 배아팠다.

지난해 말 이경미 감독이 추격자나 영화는 영화다 등을 밀어내고 각본상과 감독상을 탔을때, '저 영화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저러나' 싶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간다. 충분히 받을만했고 박수쳐줄만하다. (물론 아직 영화는 영화다를 못봤다. 컹)
한국영화계의 양미숙 같은 괴상망측하지만 사랑스러운 여성 캐릭터가 등장했다는 점,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 여성감독이 탄생했다는 점 등 이래저래 주말 밤을 유쾌하게 마무리 지어 준 영화였다.
영화 분류는 코미디 드라마라고 되어 있던데, 글쎄... 난 판타지 멜로라고 하고 싶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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