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까만책

from 이야기의 숲 2009. 6. 16. 21:56

 

 



블랙북은 마치 유태인 스파이와 독일군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를 해줄 듯 하더니,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전쟁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쟁에 미친 인간 군상들의 끔찍함이랄까. 홀로코스트를 소재로한 많은 영화를 봐왔지만 블랙북은 그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열받는' 영화였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쩜 저럴 수 있을까 싶어서 참 찝찝. 그건 단순히 나치로 대표되는 독일군 뿐 아니라 전쟁을 둘러싼 모든 인간에 대한 끔찍함이었다. 독일군의 만행이야 익히 알고 있는터였으나 그 외의 유럽인들의 광기 역시 끔찍했다. 지긋지긋해. 하긴 그때 아시아에서도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결과적으론 '인간'이라는 종족에 대한 회의가 느껴졌다는게 내 솔직한 마음이다. 뭐 나도 그 상황이라면 눈이 홰까닥해서 미친짓을 저지를 수도 있었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까 더 기분 나쁜거다. 나치에게 말도 안되는 핍박을 받았던 유태인들은 독일패전 후 독일군에게 똑같은 핍박을 가한다. 결국 그들은 '나치'였기 때문에 가해자가 되고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피해자가 된 것이 아니라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해자 나치가 되고 힘이 없었기 때문에 피해자 유태인이 된 것이다. 힘의 균형이 바뀌게 되면 결국 나치나 유태인이나 잔인하고 치졸하긴 매한가지. 그 밖에 독일과 유태인을 둘러싼 유럽인들도 전쟁통에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아볼까 싶어 온갖 추한 짓을 저지르고. 그렇게 서로 먹고 먹히는 상황. 참 무서웠다.=_= 결국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결론을 가슴 속에 새기며 파란만장했던 레이첼 스타인의 삶을 지켜보았다.

 영화가 전쟁 후 '레이첼 스타인'의 즐거운 삶을 조명하면서 끝났다면 기분이 좀 나아졌을텐데 심지어는 그것도 아니었다. 독일의 패전 후 세계2차대전에서 살아남은 레이첼 스타인은 이제 '이스라엘 대 팔레스타인' 이라는 새로운 전쟁 속에 살아가고 있다니깐. 아효 지겹다 전쟁. 

 끔찍했던 세계대전이 끝난 현재, 독일과 일본 같은 전범국가는 물론이요 그들을 둘러쌓던 세계 열강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점잖빼며 평화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그곳에서는 과거와 똑같은 말도 안되는 추악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관타나모로 가는 길 보고 정말 토나왔다.=_=) 언제든 누가 부추기기만 하면 지금 고고한 척 점잖떠는 저 나라들도 단번에 미쳐가겠지. 우리도 예외는 아닐거다. 왜냐면 인간이니까! 무섭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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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년도 블랙북 개봉 했을 때 쓴 글인데 우연히 발견해서 올린다.
다른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관점으로 영화를 본 나의 모습이 반영 되어 있다.

나는 전쟁을 소재로한 영화를 보면 늘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나의 위치는 어디일까를  고민하는 것 같다. 내가 그 상황에 있었다해도 그러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내가 그 상황에 있었다해도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늘 이 두가지 고민을 하며 극장 문을 나선다. 그리고 그 고민은 결국 인간에 대한 회의로 귀결된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요즘도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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