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은 안봤는데

from 찬란 2009. 8. 20. 01:06

웃기게도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책 보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정조 불쌍해서 ㅠ_ㅠ
그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돌에 머리를 찧고 뒤주에 들어가 비명횡사 하는걸 지켜봐야했고,
그런 상황을 아무 말 없이 방치한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봐야했으며,
왕이 되어서도 왕 보기를 동네 똥개 보듯 한 노론들한테 당하고 이게 뭥미.
진짜 권력이 커지면 눈에 뵈는게 없는지 왕한테 감히 자객을 보내?-_-
누군가가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의 환부를 의원에게 보여주지도 못하고 살았는데,
결국은 (독살로 의심되는) 의문사로 생을 마감. 휴우. 정말 불쌍한 왕 같다.
물론 그의 업적 떄문에 현대에서는 위대한 왕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그거야 지금 이야기고.

조선사 보다보면 진짜 제대로 된 왕 거의 없다.
조금만 똑똑해도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신하 오백명,
조금만 힘이 없어도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신하 오만명... 어쩌란 말이냐...
힘 좀 있다고 왕을 좌지우지 하려고 하는 신하들이나,
왕으로서의 위신을 찾을 생각 안하고 나약하게 끌려다니는 왕들이나 한심하긴 매한가지.
진짜 뭔가 왕 다운 일을 했구나 싶은 왕은 뭐 열손가락에도 꼽기 힘들듯?
조선왕조 500년이 참 허수아비라니까.
조선은 진작에 망했어야 하는 나라가 아니었을까.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때 나라 버리고 도망간 왕을 까고
역성혁명으로 새 나라를 만들었다면 막판에 그렇게까지 힘 없는 조선이 되진 않았을 것 같다.
너무 오래 해먹었어. (근데 왜 정조 불쌍해에서 너무 오래 해먹었어까지 왔지 -_-)
하긴 이런 가정 하기 시작하면 삼국을 고구려가 통일했다면
지금쯤 만주는 우리땅인데 라는 생각까지 미치게된다. (춘추 미안)
결국 다 부질없는 이야기

여튼 정조 불쌍해. 잘해줘야지(뭘)
내가 좋아하는 왕이라서 더 감정이입이 된다.
나는 왜  정조를 좋아하냐면 정조 때가 되어서야
마침내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이가환 등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완소 문인들.
그리고 정조 자체가 매력이 있다.
사도세자의 아들로 역적의 핏줄로 몰려 쫓겨날뻔 했지만
영조의 보호로 죽은 삼촌(사도세자 형)의 족보에 올라가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그걸 발판 삼아 왕이 되었는데 기껏 왕위에 올라 처음 한 소리가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라니.
대놓고 자기 아버지를 역적으로 몬 놈에게 한판 붙자는 시츄에이션.
여타 다른 왕처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신하들 비위나 맞추는 꼭두각시가 될수도 있었는데
끝까지 노론을 견제하며 정약용, 박제가 같은 이른바 아웃사이더를 정치에 등용시켰다. 굳.
게다가 자신의 침소에 들어온 자객을 단칼에 베어버릴만큼 무예도 뛰어났대. 
그 자객도 참 어설프다 싶지만(들키면 그게 자객이냐 멍충이)
그런 강인함도 멋있다.

이 시대에도 이러한 굳은 심지와 강인함으로 정의를 바로 세울 지도자를 보고 싶다.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 국정을 뒤흔들고, 민심을 외면하는 한심한 위정자들 말고. 후아

근데 정작 이산은 못봤네 픕
난 사극을 좋아하지만 왕궁내의 권력다툼 같은 건 별로 안좋아한다.
허준이나 상도 같이 왕실에서 벗어나 민중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극이 재밌다.
혹은 대장금이나 다모 같이 소재가 참신한게 재밌다.
(선덕여왕은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 보는 느낌으로 본다. 재밌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극은  왜 아무도 문인들의 삶은 다루지 않는걸까?
이순신 장군, 광개토 대왕, 왕건, 대조영 등 나라를 개창하거나 군공을 세운 이른바 무인세력?은 수없이 다루면서
정약용이나 허균 같은 문인들에 대한건 왜 안만드냐고.
잘 만들면 재밌을것 같은데.
얼마전에 '빛을 그린 사람들'이라는 BBC에서 만든 인상파 화가들의 삶에 대한 드라마를 봤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거 만들면 충분히 재밌을거다.
조선후기 북학파나, 1930년대 모던보이들의 삶을 극화하면 딱인데.

그나마 바람의 화원이 드물게 조선의 예술가의 삶을 보여주는 드라마였는데
막판에 신윤복이 정조 어진을 찢을때부터 이제 막장이구나 싶어서 안봤다.
(너무 말이 안된다.-_-)

이렇게 오늘 일기는
정조 불쌍해로 시작하여,
한국 사극의 소재 빈약으로 끝맺음. -_-

나에게 타디스가 있다면
영정조시대 살아보고 싶다.
백성으로 살면 궁궐 생활 모르니까 무수리 정도로 태어나면 적당할 것 같다. 픕.
그리고 1930년대도 살아보고 싶다.
박태원따라 청계천 나들이도 가고, 이상의 제비다방에 가서 따수운 티 드링킹 하며 고달픈 시대를 논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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